농구선수 전주원 남편 나이 한상진 아내 부인 결혼
- 전주원(錢周媛) 프로필 경력 이력
나이/생년월일
1972년 11월 15일 (만 47세)
출신학교/학력
선일초 - 선일여중 - 선일여고
포지션 - 포인트 가드
신체/키/몸무게
176cm, 67kg
실업입단 -
1990년 현대산업개발 농구단 입단
소속팀 -
현대산업개발/청주 현대 하이페리온/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1990~2011)
지도자 시절 -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코치 (2011~2012)
아산 우리은행 위비 코치 (2012~)
선일초등학교 5학년때 농구에 처음 입문했으며 선일여중고를 거쳐 1990-1991 시즌 현대산업개발에 입단, 성인 무대에 데뷔한답니다. 현대가 그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왕회장님이 2억을 베팅한 것은 유명한 일화랍니다. 실업 1년차 시절에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가드였답니다.
데뷔 당시로서는 대형 가드였던지라 농구포지션 1번부터 4번까지 뛰었으며 간혹 5번도 소화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장점은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고 리딩능력이 뛰어나 최종적으로 포인트 가드로 포지션을 자리잡았답니다. 포인트 가드로써 제 실력이 만개해 1990-1991 시즌 신인왕을 비롯 WKBL로 전환되기 전까지 한 해만 빼고 베스트5에 7회 선정됐답니다.(1991년, 1993~98년) 트리플더블을 프로에서 두 차례, 농구대잔치에서 한 차례 기록한 바 있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트리플더블이 있는데, 바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쿠바와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 올림픽 여자 농구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 더블에 성공한 것랍니다. 본인 스스로는 미국 선수들이 풀타임을 뛰었다면, 충분히 달성했을 거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 기록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 맞답니다.
지난 1990년대 정은순, 유영주, 정선민 등과 함께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간판으로 활약했답니다. 특히 이들과 함께했던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냈답니다. 시드니 올림픽 4강은 1984 LA 올림픽 은메달 이후 최고 성적이며, LA 올림픽이 공산진영이 거부한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가히 엄청난 성적이라 할 수 있답니다. 이 때가 전주원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답니다.
전주원은 2004년 여름리그 때 출산으로 잠시 빠진 것만 빼곤 거의 매해 꾸준히 출장하여 40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답니니다. 선수 말년에 가서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마침 최윤아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쏠쏠하게 활약했답니다. 프로화 이후 여자선수들의 선수 수명을 연장하는데 큰 공헌을 했는데, 특히 결혼-출산이면 으레 은퇴 크리를 맞았던 여자선수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줬다고 평가할 수 있답니다.
특히 그녀의 현역 21시즌은 여자 스포츠 통틀어서, 아니 아니, 남자 프로스포츠(개인종목 제외)까지 범위를 넓혀도 가히 대단한 기록임에 틀림없고, 출산으로 인한 휴지기 1년 후에도 출산 이전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줬다는 것은 그만큼 몸 관리가 철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답니다.
물론 출산한 후에는 잠시 코치를 맡기도 했으나, 2005년 5월에 코트로 복귀하였답니다.
지난 2000년대 초 즈음부터 선수와 코치를 겸하는 플레잉 코치이기도 했답니다. 어린 팀 후배들은 전주원을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한답니다. 은퇴 뒤에는 정식으로 신한은행의 코치로 활약 중이며 한때는 징그러울 정도로 우승 복이 없던 선수였지만 콩라인입니다.
지난 2002년 현대건설이 WKBL 리그 우승에 성공하고, 소속팀이 레알 신한이라 불릴 정도니 우승 복 없다는 이야기도 쑥 들어갔답니다. 상복도 은근히 없어서 정규리그 MVP가 선수 생활 내내 딱 한 번, 그것도 노장 반열에 들어간 2007년에 처음 받았답니다. 어시스트왕 타이틀은 상당히 많은데 무려 10번이나 어시스트왕을 차지하였답니다.
2011년 4월 20일에 FA 자격을 얻었지만, 협상을 포기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답니다. 팀 후배인 최윤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성장했고 전주원 자신도 은퇴 후 그동안 소홀했던 그녀의 딸 양육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답니다. 2011년 10월 19일 안산 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답니다. 그녀의 등번호 0번은 신한은행의 영구결번으로 정해졌답니다. 여담으로 대한민국 여자농구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포인트 가드답게 각 팀의 포인트 가드들이 선호하는 번호가 전주원이 출산 전에 썼던 5번과 영구결번이 된 0번이라고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