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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시장 유서 원본 전문 유언장 내용,타살 사망원인 사인 루머

센토스 2020. 7. 10. 14:48

7월 9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시장공관을 나서 연락이 끊긴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했답니다. 박 시장 딸이 오후 5시 17분쯤 아버지가 4~5시간 전 유언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연락이 되질 않는다며 112에 실종신고를 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성북동과 와룡공원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한지 약 7시간 만에 북한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박 시장이 사망하면서 그의 장례절차와 유가족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시장의 장례는 5일장으로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7월 13일이다. 서울특별시장이 재직 중 사망한 경우는 처음이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처음이다. 박 시장의 시신은 서울대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장례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고인의 유가족으로는 아내 강난희 씨와 딸 박다인 씨, 아들 박주신 씨가 있다. 박 시장부부는 1982년 결혼해 이듬해 딸 박다인 씨, 2년 뒤인 1985년 아들 박주신 씨를 낳았다.

 

 

박 시장은 2014년 SBS <좋은 아침>에서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박 시장은 대구에서 검찰 시보를 지낼 때 함께 일하던 친구에게 계명대 국문과 4학년이던 아내 강난희 씨를 소개받고 첫눈에 반해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박 시장은 “그땐 돈이 없어서 단골 헌책방에서 책을 선물했다”며 “세상의 매듭을 푸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잘 살게 해줄게, 고생 시키지 않을게’보다 더 와 닿았다 하더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아내 강 씨는 조용한 내조로 박 시장의 곁을 지킨 인물이다. 고인이 3선 시장이 되기까지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거의 없지만 지난해 박 시장이 강북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으로 이사했을 때는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시장 부부는 지난 2018년 8월 <여성조선>인터뷰에서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부부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아내는 시장인 남편을 소탈하고 다정한 남편으로 표현했다. 그는 당시 “(박 시장이) 아무거나 잘 먹고 잠도 주무시려고 마음만 잡수면 아무 데서나 잘 주무시고 가끔 단팥빵 드시는 게 전부”라고 남편에 대해 말했다.

 

인터뷰 당시 박 시장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질문에 “스타일링을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고 평소 시장님 헤어를 만져주는 분을 유심히 보면서 배웠다. 대단한 건 없고, 볼륨을 줄 부분을 이곳저곳 봐가면서 매만져주는 정도”라고 답했다.

 

 

딸 박다인 씨는 서울예고를 졸업해 2002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 2006년 서울대 법대로 전과 했다. 이를 두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후보와 친한 법대 교수들이 전과 과정에서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미대에서 법대로 전과한 사례는 박다인 씨가 처음이었기 때문. 당시 박원순 후보는 이런 의혹에 대해 “절차에 따라 전과했고 딸이 우등졸업을 했다”고 해명했다.

 

 

박다인 씨는 2011년 7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스위스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 박원순 후보 측은 “박 후보의 딸이 빌스도르프재단에서 장학금 4500만원을 받아 제네바아카데미에서 법학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생전 아들 박주신 씨는 병역비리 의혹을 받기도 했다. 박주신 씨는 2011년 8월 공군에 입대했으나 ‘대퇴부 말초신경 손상’ 진단을 받고 나흘 만에 귀가 조치됐다. 이를 두고 박주신 씨가 병역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MRI를 바꿔치기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2012년 2월 22일 세브란스 병원이 판독한 결과 군에 제출된 MRI사진은 박주신 씨 본인의 것이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박주신 씨는 영국에서 아내 맹 모씨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생전 아들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가 시장이란 이유로 일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에 자신의 지인조차 초대하지 못했다”며 “공익근무 중에도 사람들의 관심으로 치료조차 편하게 받을 수 없었다”며 미안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