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두
이순재 부인 고향 아내 나이 학력 최희정 학교 집안 본문
지난 2018년 3월1일 방송된 TV조선 '마이웨이'에서는 이순재와 아내, 서울대 이화여대 커플의 53년 러브스토리가 공개됐답니다.
과거 한 공식석상에서 이순재 아내는 "연예인 부인들은 힘들고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순재는 "결혼을 결심해도 상대방의 직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 집사람도 무용을 했기 때문에 직종에 대한 이해가 있어 결혼하게 됐다. 수입이 있나 뭐가 있다. 그때도 TV가 시작되고 활동이 시작됐으니 약간의 근거는 마련됐다는 거다. 그러니까 나도 결혼해야겠다 생각한 거나. 남의 처녀를 데려다 왜 망쳐놓겠나"라고 털어놨다.
이어 이순재는 "아내가 미인이다"는 칭찬에 "지금보니까 미인이더라"며 웃었다. 이순재 아내 최희정씨는 이화여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당시 세계 무대에서 신인상을 받을 정도의 인재였지만 무용을 그만두고 남편 내조에만 최선을 다했다. 그로 인해 남편은 롱런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가정에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진 못했다. 이순재는 "원래 배우라는 직종은 대중과 약속한 직종이기 때문에 연기가 최우선이다. 가긴 어딜가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이순재는 1956년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HLKZ-TV에서부터 출연했고 KBS의 첫 TV 드라마인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도 출연했기 때문에 그의 연기 인생은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의 처음부터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당시에는 필름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웬만한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방영했으므로 영상자료가 없다.
이순재의 증언으로는 당시 드라마에서는 NG가 나도 그냥 밀어붙였다고 한다. 프롬프트도 따로 없던 시절이라 대본 든 스탭이 밀고 들어오고, 카메라가 줌인 기능이 없다보니 배우한테 들이밀다 부딪히는 장면이 그대로 나가는 등 지금으로썬 상상하기도 힘든 광경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초창기 드라마란 무대에서 하던 연극을 TV 전파라는 신문물에 실어 내보낸다는 개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로 연극처럼 표를 끊고 현장에 가야 하는 연극을 TV라는 신수단으로 내보내는 정도로 생각한 것. 그러니 필름이 비싼 이유도 있었거니와 편집 개념 없이 실황 연기가 기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현대의 연극이나 뮤지컬도 NG를 내면 배우가 알아서 애드리브로 때워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비디오 테이프가 도입된 이후로도 1980년대까지도 테이프 가격이 비싸다고 테이프를 돌려서 썼기 때문에 1980년대까지의 드라마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당시 이순재가 연기하는 영상은 TV드라마로는 볼 수 없고 주로 영화로 봐야 한다. 심지어 1970년에 팔도며느리에 30대 중반이였는데 고작 20대 초반 밖에 안 된 김수미도 출연했으나 부하로 출연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으로 엘리트 배우이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동아방송 라디오 드라마 삼국지 녹음도중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뻔 했었는데 이 당시에는 녹음실에 무지향성 마이크 하나밖에 없어서 라디오 드라마 방송 때는 배우들 바로 옆에서 효과음을 넣어야 했다.
그런데 삼국지 녹음 당시 음향 스테프로 일하던 김벌래가 옆에서 식칼로 칼싸움 효과음을 내던 중, 식칼에서 날이 빠져서 이순재의 목덜미를 스치고 날아가 벽에 박혀버렸다. 조금만 운이 나빴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했던 것. 이 사고를 계기로 녹음실에는 효과음 콘솔이 따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순재는 타고난 천재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올라운드 그 자체다. '풍운'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가장, '허준'에서의 엄격하지만 환자를 위해 헌신하고 제자를 위해 자신의 시신을 해부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참스승,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나이값 못하는 돌팔이 의사, '야인시대'에서는 자상한 할아버지 등 어떤 캐릭터를 맡겨도 100% 소화해내는 모습은 시청자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방송국 원로대접 받는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악역도 많이 했다.
하이킥 이후 원로 연기자로서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그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가 잦다. 특히 못마땅해 하는게 젊은 배우들이 대본은 안 보고 딴짓한다든가 합 안맞춰보고 혼자 밴에 틀어박혀 있는 것. 남에게 훈련을 강조하며 본인 스스로도 매일 발성 연습을 몇 시간씩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일단 이게 기초작업이고 연기로 가면 시간이 더 왕창 들어간다. 본인은 오랜 연기 인생의 비결로 암기력, 금주, 연구를 꼽았다. 특히 술에 대해서는 당시 깡소주(강소주)를 마시던 배우들은 지금 대부분 연기에서 은퇴했다고 금주를 강조했다.
스스로 작품 복은 좋은데, 상복은 없는 배우라 말할 정도로 히트작은 많지만 굵직한 상과는 인연이 없다. 하이킥의 야동순재 역으로 무한도전 팀과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공동 수상한 게 가장 큰 상일 정도. 연기대상을 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김혜자와 강부자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이순재는 젊은 시절에 주연급 톱스타는 아니었다. 이순재는 활동 초창기부터 자기보다 유명한 배우를 많이 만났다. 60년대 시점에서는 신성일, 신영균, 남궁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수많은 흥행작을 낼 때, 이순재는 이들 영화에서 고작해봐야 조연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70년대 시점에서도 영화 팔도며느리가 70년도인데 당시 나이가 37살이였고 20대 초밖에 안 된 김수미와 출연한 바 있고 한진희, 노주현, 박근형, 임채무처럼 당시에도 쟁쟁한 후배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순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남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 마디로 이순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